Ⅰ. 여러 조건에 앞서는데 왜 유대인에게 뒤지는가?
한국과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아 있다. 나라와 민족이 수많은 고난과 박해와 침략을 받은 것이 그렇고, 지정학적으로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있는 것이 그렇다. 작은 땅과 소수의 인구가 유사하고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그렇다. 모두 자녀교육에 매우 열심인 것이 그렇고 단기간에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보인 것도 그렇다. 두 나라 모두 국방비와 교육비에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고, 나라가 독립을 선포하고 정부를 세운 것이 1948년으로 동일하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크게 다르다. 유대인들은 통틀어 1500만 명 정도로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8000만 명이 넘어 1.2%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땅 넓이는 우리나라 한반도 전체의 11분의 1정도, 남한의 5분의 1정도다. 우리 한국인은 평균 지능지수가 106으로 세계 최고의 IQ이지만, 이스라엘은 94로 세계 45위이다. 국제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는 1-4위로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이스라엘은 OECD 34 국가 중 30위 정도에 머문다. 세계올림피아드에서도 우리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지만, 이스라엘이 최상위권에 들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유대인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유대인들의 교육열이 높다지만,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는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사 수준도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과 교사 수준도 가히 세계 최고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와야 하고 노벨상도 가장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이지만, 유대인은 현재 스스로 유대인이라 밝힌 경우만 해도 200명이 가깝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한국계 학생이 1% 될까 말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왜 우리는 최고의 지능과 최고의 열심과 노력, 그리고 최고의 교육열을 가지고서도 유대인을 따라잡지 못하는가? 우리의 교육은 한 마디로 ‘듣고 외우고 시험 보고 잊어버리고’의 반복이다. 우리의 교육은 그 어디를 가나 강의나 설명을 계속 듣는 교육이다. 교실에서 10년이 넘도록 선생님에게 설명을 듣는다. 도서관에서도 칸막이가 되어 있는 자리에 혼자 앉아서 책을 죽어라 하고 읽으면서 죽어라 하고 외운다. 열심히 듣고 공부하고 외운 것을 바탕으로 시험을 본다. 시험을 보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 잊어버린다. 열심히 듣고 외우고 공부했던 지식들은 모두 컴퓨터 안에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렇게 외운 지식들은 쓸모가 없다.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정답, 지식, 듣는 교육, 성적을 다양한 해답, 지혜, 묻는 교육, 실력으로 바꿔야 한다. 계속 학원에서 공부만 하고 밤에 잠을 못 자고 책상에 앉아서 달달 외우는 것이 정말 효과적인 교육이라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많이 진학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많이 나와야 설득력을 갖는다. 가정을 중심으로 대화와 토론을 하는 유대인 교육이 비효율적이고, 한국처럼 학교와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인구 비례로 보아도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좋은 대학에 많이 가야 하고,, 사회적으로 더 많이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가 유대인에 비해 거의 모든 조건이 앞서는 데도 성과에서 뒤지는 것은 우리가 단 하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방법, 공부방법이다. 유대인의 공부방법이 하브루타다.
Ⅱ.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창의인재를 만드는 하브루타
1. 하브루타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나 미국 유대 사회에 가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유대인 전통학교인 예시바가 있다. 예시바에서는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매우 시끄럽게 논쟁하면서 공부한다. 이렇게 친구와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을 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하브루타’라고 한다. 즉 하브루타는 보통 2명이 짝을 지어 프렌드십(friendship), 파트너십으로 공부하는 것(study partnership)을 말한다. 때에 따라 여러 명이 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보통이 두 명이고 거의 4명을 넘지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이 짝을 지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논쟁 수업 방식이다. 즉 친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파트너와 함께 토라와 탈무드를 연구해 왔다. 두 사람은 함께 앉아서 본문을 큰소리로 읽고 그것을 토론하고 분석한다. 또 다른 본문과의 관계를 살피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그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 그들이 동의가 되지 않을 때는 자신들의 이유를 차근차근 제시한다. 하브루타를 통한 공부는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서로 간의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하브루타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존재한다. 신문에도 있고, 수선공과의 대화 속에도 있고, 나이든 부모와 학생 간의 문제 속에도 있다. 하브루타의 개념은 현상을 보는 한 가지의 옳은 방법보다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초한다.
하브루타는 원래 토론을 함께 하는 짝, 즉 파트너 자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방법을 일컫는 말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브루타는 토론하는 상대방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짝을 지어 토론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후자의 개념으로 주로 쓰인다.
하브루타에 대해 연구자가 내린 정의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화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면 논쟁이 된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자녀가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아이가 암기와 이해를 잘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가르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예시바에서 토라와 탈무드의 구절을 놓고 둘 씩 짝을 지어 진지하게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회당에서 평생지기와 만나 탈무드 공부를 하면서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2. 최강의 창의인재를 양성하는 하브루타
짝을 이루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게 하며,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가가 되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첫째, 뇌를 격동시켜 고등사고력을 기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브루타가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뇌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브루타는 무엇보다도 뇌를 격동시키는 교육이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이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이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된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렇게 변호사와 검사가 논쟁하듯이 어렸을 때부터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으로 공부한다면 뇌가 계발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둘째, 다양한 생각과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또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견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창의성이란 다르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이다. 왜냐하면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체가 랍비와 현자들의 토론과 논쟁집인데, 그런 대가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하고 다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 하브루타이기 때문이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는 다른 나만의 견해를 가져야 토론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토론에 이길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나만의 생각, 새로운 생각,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셋째,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 저절로 가능하다. 교육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이 밖에 있고, 그런 지식을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달하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주도 학습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의 본래 의미는 학생들의 안에 있는 것들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이 미리 공부하고, 토론을 준비해야 수업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저절로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 가능하다. 유대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 자료를 찾고, 고민하고, 부모에게 물으면서 토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소통과 경청, 설득의 능력을 기른다. 더불어 하브루타는 의사소통 능력, 경청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대에 들어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어도 그것을 인간관계를 통하여 풀지 못하면, 그것은 썩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전혀 쓸모가 없다. 하브루타 자체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이 저절로 생기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저절로 경청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저절로 길러준다.
다섯째,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질문이 좋아야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질문이 좋아야 생각을 날카롭게 할 수 있다. 배움 역시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배우려면 질문을 가져야 한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지혜의 출발이다. 알면 알수록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늘어난다. 그래서 질문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적인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왜?’ ‘왜?’라는 질문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불과 600만 정도의 인구로 자신들의 20배 규모인 아랍권에 둘러싸여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여섯째, 친구를 통해 서로를 날카롭게 한다. 토라와 탈무드를 근거로 한 치열한 토론의 장점은 날카로운 마음과 선한 성품을 개발하여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는 데 있다. 철은 철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이웃과 부딪쳐야 지혜가 예리해진다. 이는 철이 철과 서로 부딪치면서 더욱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유대인은 하브루타로 학습함으로써 지능이 발달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지혜로워지려면 친구와 부딪치면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친구들과 부딪치면서 서로를 날카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날카롭게 한다는 것이 필풀(Pilpul)이다. 이것은 ‘날카로운 분석’을 의미하며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법을 말한다. 탈무드를 토론할 때 할라카 판결이나 다른 본문에 대해 여러 단어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하고 갈등이나 모순 등을 찾아내기 위해 본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하브루타 정신이다.
일곱째, 평생의 친구들을 얻게 된다. 하브루타는 평생의 친구를 얻게 만든다. 어떤 사람에게 평생지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도 평생 동안 매일 만나는 벗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루에 회당을 두 번 가서 세 번의 기도회를 매일 하기 때문에 회당을 통해 하브루타 친구를 매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유대인 네트워크의 기본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의 기본 네트워크이며 사회성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관계가 그 어떤 민족보다 돈독한 것이고, 그 네트워크가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것들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하브루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보다도 중요하다.
3. 최고의 공부방법 하브루타
한국교육은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 하나만 제대로 이해해도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학습 피라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한 다음에 24시간 후에 남아 있는 비율을 피라미드로 나타낸 것이다. 이 피라미드를 보면 강의 전달 설명은 5%, 읽기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견학은 30%의 효율성을 갖는다. 우리가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를 통해 설명하는 교육은 5%에 불과하고,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10%, 그렇게 강조해온 시청각교육은 20%에 불과하다. 그런데 토론은 50%, 직접 해보는 것은 75%,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90%의 효율을 갖는다. 이것은 친구를 가르치는 것으로 1시간 공부한 사람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려면 읽기는 9시간, 강의는 18시간을 해야 한다. 친구를 가르치는 공부는 강의를 듣는 공부보다 18배의 효율성을 갖는다.
유대인들이나 핀란드교육이 우리보다 공부를 덜하고도 성공하는 이유는 이런 공부의 효율성 때문이다. 우리는 강의와 설명을 듣고, 읽으면서 외우는 수업이 대부분이지만, 유대인이나 핀란드는 토론을 하고 직접 해보고 친구와 토론하면서 서로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듣고 외우는 형태에서 벗어나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고, 질문과 토론을 통해 친구를 가르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하는 소통의 공부가 바로 하브루타다. 하브루타는 90%의 효율성을 가진 친구와 토론하면서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최고의 공부방법인 것이다.
Ⅲ. 교육방법 하나만 바꾸면 된다
유대인 교육과 한국인의 교육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 <표 1>이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한 마디로 ‘듣고 외우고 시험보고 잊어버리고’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교육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하브루타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교육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개념은 지식을 지혜와 고등 사고력으로, 암기에서 토론으로, 성적을 실력으로, 하나의 정답을 다양한 해답으로, 듣는 교육을 묻는 교육으로, 고립된 공부를 소통하는 공부로, 지겨운 공부를 즐거운 공부로, 타율적인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공부로 바꾸는 핵심 비결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데 정작 공부를 싫어하게 만들고, 세계 올림피아드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그와 관련된 노벨상은 탄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해결책이다. 자녀들의 교육에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키우지만 정작 그 자녀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한국 부모들에 대한 해결책이다. 하브루타는 한국교육을 바꾸는 핵심 키워드다.
하브루타는 인성과 창의성에 탁월한 교육방법이다. 토론교육은 학습자의 인지적, 창의적, 사회적 학습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아이디어 산출, 개선과 수정, 보완과 결합 등의 창의적인 특성들을 자극해서 싹을 틔운다, 타인과 더불어 하는 학습과정을 통해 서로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하는 습관을 통해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하브루타는 우리에게 있어 모든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교육혁명에 해당한다. 하브루타는 우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핵심이다. 새롭고 다른 시각을 가지고 보게 하는 창의성을 본질적으로 계발시키며, 모든 문제를 가정에서 의논하고 토론하게 함으로써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지 않게 하는 인성교육에도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거의 모든 것에서 앞서므로 교육방법 단 하나만 바꾸면 유대인을 넘어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Ⅰ. 여러 조건에 앞서는데 왜 유대인에게 뒤지는가?
한국과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아 있다. 나라와 민족이 수많은 고난과 박해와 침략을 받은 것이 그렇고, 지정학적으로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있는 것이 그렇다. 작은 땅과 소수의 인구가 유사하고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그렇다. 모두 자녀교육에 매우 열심인 것이 그렇고 단기간에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보인 것도 그렇다. 두 나라 모두 국방비와 교육비에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고, 나라가 독립을 선포하고 정부를 세운 것이 1948년으로 동일하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크게 다르다. 유대인들은 통틀어 1500만 명 정도로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8000만 명이 넘어 1.2%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땅 넓이는 우리나라 한반도 전체의 11분의 1정도, 남한의 5분의 1정도다. 우리 한국인은 평균 지능지수가 106으로 세계 최고의 IQ이지만, 이스라엘은 94로 세계 45위이다. 국제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는 1-4위로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이스라엘은 OECD 34 국가 중 30위 정도에 머문다. 세계올림피아드에서도 우리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지만, 이스라엘이 최상위권에 들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유대인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유대인들의 교육열이 높다지만,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는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사 수준도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과 교사 수준도 가히 세계 최고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와야 하고 노벨상도 가장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이지만, 유대인은 현재 스스로 유대인이라 밝힌 경우만 해도 200명이 가깝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한국계 학생이 1% 될까 말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왜 우리는 최고의 지능과 최고의 열심과 노력, 그리고 최고의 교육열을 가지고서도 유대인을 따라잡지 못하는가? 우리의 교육은 한 마디로 ‘듣고 외우고 시험 보고 잊어버리고’의 반복이다. 우리의 교육은 그 어디를 가나 강의나 설명을 계속 듣는 교육이다. 교실에서 10년이 넘도록 선생님에게 설명을 듣는다. 도서관에서도 칸막이가 되어 있는 자리에 혼자 앉아서 책을 죽어라 하고 읽으면서 죽어라 하고 외운다. 열심히 듣고 공부하고 외운 것을 바탕으로 시험을 본다. 시험을 보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 잊어버린다. 열심히 듣고 외우고 공부했던 지식들은 모두 컴퓨터 안에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렇게 외운 지식들은 쓸모가 없다.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정답, 지식, 듣는 교육, 성적을 다양한 해답, 지혜, 묻는 교육, 실력으로 바꿔야 한다. 계속 학원에서 공부만 하고 밤에 잠을 못 자고 책상에 앉아서 달달 외우는 것이 정말 효과적인 교육이라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많이 진학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많이 나와야 설득력을 갖는다. 가정을 중심으로 대화와 토론을 하는 유대인 교육이 비효율적이고, 한국처럼 학교와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인구 비례로 보아도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좋은 대학에 많이 가야 하고,, 사회적으로 더 많이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가 유대인에 비해 거의 모든 조건이 앞서는 데도 성과에서 뒤지는 것은 우리가 단 하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방법, 공부방법이다. 유대인의 공부방법이 하브루타다.
Ⅱ.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창의인재를 만드는 하브루타
1. 하브루타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나 미국 유대 사회에 가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유대인 전통학교인 예시바가 있다. 예시바에서는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매우 시끄럽게 논쟁하면서 공부한다. 이렇게 친구와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을 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하브루타’라고 한다. 즉 하브루타는 보통 2명이 짝을 지어 프렌드십(friendship), 파트너십으로 공부하는 것(study partnership)을 말한다. 때에 따라 여러 명이 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보통이 두 명이고 거의 4명을 넘지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이 짝을 지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논쟁 수업 방식이다. 즉 친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파트너와 함께 토라와 탈무드를 연구해 왔다. 두 사람은 함께 앉아서 본문을 큰소리로 읽고 그것을 토론하고 분석한다. 또 다른 본문과의 관계를 살피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그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 그들이 동의가 되지 않을 때는 자신들의 이유를 차근차근 제시한다. 하브루타를 통한 공부는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서로 간의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하브루타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존재한다. 신문에도 있고, 수선공과의 대화 속에도 있고, 나이든 부모와 학생 간의 문제 속에도 있다. 하브루타의 개념은 현상을 보는 한 가지의 옳은 방법보다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초한다.
하브루타는 원래 토론을 함께 하는 짝, 즉 파트너 자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방법을 일컫는 말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브루타는 토론하는 상대방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짝을 지어 토론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후자의 개념으로 주로 쓰인다.
하브루타에 대해 연구자가 내린 정의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화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면 논쟁이 된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자녀가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아이가 암기와 이해를 잘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가르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예시바에서 토라와 탈무드의 구절을 놓고 둘 씩 짝을 지어 진지하게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회당에서 평생지기와 만나 탈무드 공부를 하면서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2. 최강의 창의인재를 양성하는 하브루타
짝을 이루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게 하며,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가가 되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첫째, 뇌를 격동시켜 고등사고력을 기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브루타가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뇌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브루타는 무엇보다도 뇌를 격동시키는 교육이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이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이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된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렇게 변호사와 검사가 논쟁하듯이 어렸을 때부터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으로 공부한다면 뇌가 계발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둘째, 다양한 생각과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또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견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창의성이란 다르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이다. 왜냐하면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체가 랍비와 현자들의 토론과 논쟁집인데, 그런 대가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하고 다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 하브루타이기 때문이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는 다른 나만의 견해를 가져야 토론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토론에 이길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나만의 생각, 새로운 생각,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셋째,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 저절로 가능하다. 교육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이 밖에 있고, 그런 지식을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달하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주도 학습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의 본래 의미는 학생들의 안에 있는 것들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이 미리 공부하고, 토론을 준비해야 수업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저절로 자기주도 학습, 자기동기 학습이 가능하다. 유대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 자료를 찾고, 고민하고, 부모에게 물으면서 토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소통과 경청, 설득의 능력을 기른다. 더불어 하브루타는 의사소통 능력, 경청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대에 들어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어도 그것을 인간관계를 통하여 풀지 못하면, 그것은 썩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전혀 쓸모가 없다. 하브루타 자체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이 저절로 생기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저절로 경청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저절로 길러준다.
다섯째,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질문이 좋아야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질문이 좋아야 생각을 날카롭게 할 수 있다. 배움 역시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배우려면 질문을 가져야 한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지혜의 출발이다. 알면 알수록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늘어난다. 그래서 질문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적인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왜?’ ‘왜?’라는 질문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불과 600만 정도의 인구로 자신들의 20배 규모인 아랍권에 둘러싸여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여섯째, 친구를 통해 서로를 날카롭게 한다. 토라와 탈무드를 근거로 한 치열한 토론의 장점은 날카로운 마음과 선한 성품을 개발하여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는 데 있다. 철은 철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이웃과 부딪쳐야 지혜가 예리해진다. 이는 철이 철과 서로 부딪치면서 더욱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유대인은 하브루타로 학습함으로써 지능이 발달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지혜로워지려면 친구와 부딪치면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친구들과 부딪치면서 서로를 날카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날카롭게 한다는 것이 필풀(Pilpul)이다. 이것은 ‘날카로운 분석’을 의미하며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법을 말한다. 탈무드를 토론할 때 할라카 판결이나 다른 본문에 대해 여러 단어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하고 갈등이나 모순 등을 찾아내기 위해 본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하브루타 정신이다.
일곱째, 평생의 친구들을 얻게 된다. 하브루타는 평생의 친구를 얻게 만든다. 어떤 사람에게 평생지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도 평생 동안 매일 만나는 벗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루에 회당을 두 번 가서 세 번의 기도회를 매일 하기 때문에 회당을 통해 하브루타 친구를 매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유대인 네트워크의 기본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의 기본 네트워크이며 사회성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관계가 그 어떤 민족보다 돈독한 것이고, 그 네트워크가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것들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하브루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보다도 중요하다.
3. 최고의 공부방법 하브루타
한국교육은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 하나만 제대로 이해해도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학습 피라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한 다음에 24시간 후에 남아 있는 비율을 피라미드로 나타낸 것이다. 이 피라미드를 보면 강의 전달 설명은 5%, 읽기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견학은 30%의 효율성을 갖는다. 우리가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를 통해 설명하는 교육은 5%에 불과하고,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10%, 그렇게 강조해온 시청각교육은 20%에 불과하다. 그런데 토론은 50%, 직접 해보는 것은 75%,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90%의 효율을 갖는다. 이것은 친구를 가르치는 것으로 1시간 공부한 사람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려면 읽기는 9시간, 강의는 18시간을 해야 한다. 친구를 가르치는 공부는 강의를 듣는 공부보다 18배의 효율성을 갖는다.
유대인들이나 핀란드교육이 우리보다 공부를 덜하고도 성공하는 이유는 이런 공부의 효율성 때문이다. 우리는 강의와 설명을 듣고, 읽으면서 외우는 수업이 대부분이지만, 유대인이나 핀란드는 토론을 하고 직접 해보고 친구와 토론하면서 서로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듣고 외우는 형태에서 벗어나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고, 질문과 토론을 통해 친구를 가르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하는 소통의 공부가 바로 하브루타다. 하브루타는 90%의 효율성을 가진 친구와 토론하면서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최고의 공부방법인 것이다.
Ⅲ. 교육방법 하나만 바꾸면 된다
유대인 교육과 한국인의 교육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 <표 1>이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한 마디로 ‘듣고 외우고 시험보고 잊어버리고’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교육방법은 변하지 않았다. 하브루타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교육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개념은 지식을 지혜와 고등 사고력으로, 암기에서 토론으로, 성적을 실력으로, 하나의 정답을 다양한 해답으로, 듣는 교육을 묻는 교육으로, 고립된 공부를 소통하는 공부로, 지겨운 공부를 즐거운 공부로, 타율적인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공부로 바꾸는 핵심 비결이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데 정작 공부를 싫어하게 만들고, 세계 올림피아드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그와 관련된 노벨상은 탄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해결책이다. 자녀들의 교육에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키우지만 정작 그 자녀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한국 부모들에 대한 해결책이다. 하브루타는 한국교육을 바꾸는 핵심 키워드다.
하브루타는 인성과 창의성에 탁월한 교육방법이다. 토론교육은 학습자의 인지적, 창의적, 사회적 학습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아이디어 산출, 개선과 수정, 보완과 결합 등의 창의적인 특성들을 자극해서 싹을 틔운다, 타인과 더불어 하는 학습과정을 통해 서로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하는 습관을 통해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하브루타는 우리에게 있어 모든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교육혁명에 해당한다. 하브루타는 우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핵심이다. 새롭고 다른 시각을 가지고 보게 하는 창의성을 본질적으로 계발시키며, 모든 문제를 가정에서 의논하고 토론하게 함으로써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지 않게 하는 인성교육에도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거의 모든 것에서 앞서므로 교육방법 단 하나만 바꾸면 유대인을 넘어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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