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폐 끝자락의 작고 어두운 흔적, 변화의 시작이 되다
2년 전 건강검진 날을 여전히 똑똑히 기억한다.
검진 결과를 설명하던 의사 선생님은 X-ray와 CT 영상을 가리키며 폐 한구석에 미세한 자국(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큰 병은 아닐 수 있지만, 위험 요인이 있으니 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관찰을 하며 경과를 봅시다."라는 담담한 말이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길로 보건소 금연클리닉의 문을 두드렸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금연 프로그램에 등록하며,
평생 손에서 놓지 못했던 담배를 잘라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된 금연이 오늘로 586일 19시간 43분을 지나고 있다.
초반의 피어오르던 흡연 욕구,
금단현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앱 화면 속 초 단위로 올라가는 금연 시간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의지를 다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
도착한 2026년도 건강검진 결과표.
의사 선생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폐에 있던 자국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관리 아주 잘하셨네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역시 담배를 끊길 정말 잘했구나.
' 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5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참아낸 노력은 깨끗해진 폐라는 정직한 선물로 돌아왔다.

산책로-2
2. '전분세락(轉糞世樂)'과 삶의 질: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최근 어느 탈북민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다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질문 하나를 접했다.
"남한에서 1년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북한에서 10년을 살겠습니까?"
그 유튜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옥 같은 곳에서 10년을 사느니, 자유롭고 행복한 천국에서 단 1년을 살겠다"고 답했다.
사람마다 처해 있는 환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정답은 다를 것이다.
우리에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익숙한 속담이 있다.
아무리 비천하고 괴로운 삶이라 할지라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편이 낫다는 뜻으로,
한자어로는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똥밭을 구르더라도 세상은 즐겁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벽에 똥칠을 할 정도로 병들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무의미하게 오래 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건강하고 품위 있게, 짧더라도 밀도 높은 삶을 살 것인가?"
누군가는 연명의 삶을 선택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답은 단연 후자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짐을 남겨주는 삶을 원치 않는다.
내 두 발로 당당히 서서, 내 숨으로 숨 쉬며,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온기를 나누다가 건강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존엄하고 행복한 삶'이자, 금연을 결심하게 된 진짜 이유였다

3. 호수공원 산책로, 40분에서 15분으로 줄어든 기적
건강해진 폐와 함께 삶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 약 3개월 전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집 근처 호수공원 산책로에서 시작한 ‘달리기(Running)’였다.
▲ [사진 1] 나무 그늘 아래 깔끔하게 조성된 호수공원의 우레탄 산책로. 매일 아침 신발 끈을 묶고 나서는 길이다.
처음 산책로에 섰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잘 정비된 트랙을 바라보며 자신 있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폐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고, 결국 러닝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거의 걷는 수준'으로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겨우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무려 40분 이상이 걸려 있었다.
▲ [사진 2]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내 안의 한계를 시험하던 산책로 갈림길.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금연 500여 일을 버텨낸 오기와 인내심이 다시 발동했다.
- 1단계 (초기): 걷는 비중을 높이고 간신히 조금씩 뛰기 (40분 소요)
- 2단계 (중기): '6회 정도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는 인터벌 형식으로 페이스 조절 (20분 소요)
- 3단계 (현재): 한 번도 쉬지 않고 공원 산책로 한 바퀴를 단숨에 완주 (15분 소요)
▲ [사진 3] 가파른 숨을 누르고 달릴 때 눈앞에 펼쳐지는 호수공원의 은빛 갈대밭.

산책로-4
▲ [사진 4] 차오르는 숨 사이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와 가을의 서정적인 풍경.
달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산책로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억새와 갈대숲,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그리고 호숫가의 서정적인 공기는 숨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었다.
3개월 만에 폐활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15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릴 때 느껴지는 쾌감은 담배가 주던 찰나의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도파민을 선사했다.

4. 모든 성장의 비밀, '꾸준함의 반복'
▲ [사진 5] 해 질 녘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 산책로. 꾸준한 반복이 만든 변화를 곱씹으며 달린다.
40분이 걸리던 길을 15분 만에 달릴 수 있게 되면서 새삼 깨달은 삶의 진리가 있다.
일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삶의 그 어떤 영역이든... 모든 성장은 '꾸준한 반복' 끝에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이다.
금연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만 더 참자'는 마음이 586일 동안 반복되어 깨끗한 폐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러닝 역시 첫날의 숨 차오름을 이겨내고 매일 신발 끈을 매는 행위를 반복했기에 15분 완주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원한다.
하지만 진짜 삶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일상적인 반복의 힘이다.
'전분세락'의 의미처럼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만나며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천국 같은 1년을 제대로 누리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호수공원의 바람을 맞으며 운동화 끈을 묶는다.
맑아진 숨을 깊게 마시며, 내일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달려나간다.
💡 글을 마치며
- 금연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보건소 금연클리닉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보세요. 혼자 싸우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큰 도움이 됩니다.
- 러닝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처음부터 무리해서 뛰지 말고 '걷다 뛰다'를 반복해 보세요. 폐활량과 체력은 정직하게 늘어납니다. 속도보다는 천천히 뛰더라도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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